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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기타

절망한 날엔 키에르케고르

by KIMLOG 2021. 1. 20.

1. 이 책은

  • 이 책은 힘들 때 보기에도, 좋을 때 보기에도 좋지 않은 책이다.
    힘들 때 보기에는 내용에 공감이 안 갈 수 있고, 좋을 때 보기에는 너무 무겁다는 느낌이 있다.
    힘들다/좋다 는 느낌 없는 지금 읽기 딱 좋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적당히 공감가는 부분도 있고, 다른 의견을 가진 부분도 있는데
    한 사람의 견해를 보는 거니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2. 책에서 배우다

  • 절망에 빠진 사람이 다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다는 말에 공감이 많이 갔다.
    내가 절망에 빠진 상황에서 동일하게 그런 오류를 범했기 때문이다.
    ‘절대로’나 ‘언제나’라는 표현이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보면 말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3. 꼭 기억할 인용구

  • 절망에 빠진 사람은 다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다. 절망한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절대로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앞으로도 언제나 실패할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일이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냥 나 때문이다.” 절망에 빠진 사람이 흔히 사용하는 ‘절대로’나 ‘언제나’라는 표현은 절망한 사람의 강박적인 불안감을 잘 보여준다. 그가 겪는 상황은 특정한 문제 중 하나인데 마치 전체 문제처럼 일반화시킨다.
  • 절망은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관계가 있다. 그러다 보니 절망은 현대 시대의 진정한 질병이 되었고 의학이 자연스럽게 분석하는 대상이 되었다. 절망을 견디다 못해 도움을 받고자 정신상담 클리닉을 찾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의학적으로 접근하면 장점도 있지만 의학적인 관점에서 내세우는 전제가 과연 타당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4. 좋은 인용구 필사

 

10p 먼저 자신의 문제를 식별하고 나서 새로운 이론의 도움을 받아 그런 문제를 해석해야 한다. 그러면 결국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21p 우리도 관점을 바꾸어서 이런 질문을 해보자. “진정으로 절망은 ‘질병’으로 보아야 하는것일까?”

 

24p 얼핏 보면 우리는 실연과 같은 여러 상황 때문에 절망하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가 절망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 때문이다.

 

25p 자신의 부족한 점을 ‘단점’으로 낙인찍고 특정 단점에만 집중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기 단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던 시각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으로 급변한다. 

 

26p 우리는 특정 단점 하나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 때문에 절망한다.

 

26p 절망은 언뜻 철저한 자기비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은밀한 자기중심적인 태도다. 자기중심적인 자아에게 “너만 바라보지 마, 네 생각만 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27p 나 자신을 미워하는 것도 과도한 자기애의 형태다.

 

29p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자살은 자신을 파괴하려는 의지가 아니다. 오히려 아무리 애써도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자 결국 선택하는 것이 자살이다. 점점 강해지는 모순을 없애기 위해서.

 

33p 절망은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관계가 있다. 그러다 보니 절망은 현대 시대의 진정한 질병이 되었고 의학이 자연스럽게 분석하는 대상이 되었다. 절망을 견디다 못해 도움을 받고자 정신상담 클리닉을 찾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의학적으로 접근하면 장점도 있지만 의학적인 관점에서 내세우는 전제가 과연 타당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35p 절망에 빠진 사람은 다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다. 절망한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절대로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앞으로도 언제나 실패할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일이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냥 나 때문이다.” 절망에 빠진 사람이 흔히 사용하는 ‘절대로’나 ‘언제나’라는 표현은 절망한 사람의 강박적인 불안감을 잘 보여준다. 그가 겪는 상황은 특정한 문제 중 하나인데 마치 전체 문제처럼 일반화시킨다.

 

37p 키에르케고르가 비판하는 것은 평소에 절망을 다루는 방식이다. 그에 따르면 자기 비하를 망상처럼 볼 수는 없다. 망상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과정으로 설명해야 한다. 실제로 어떤 특정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어떤 것이 계기가 되어 절망하게 된다. 하지만 계기가 절망을 부른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48p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온전한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50p 우리는 고통스러우면 즉각 고통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 고통의 원인을 우리 탓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외부 상황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따라서 고통을 불러온 객관적인 상황을 바꾸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게 된다는 논리가 나온다.

 

55p 우리는 단순히 감정적인 존재도 아니며 타인이나 자아와 곧바로 관계를 맺는 존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에 앞서 생각도 하고 자기비판도 하는 존재다. 그런데 행복주의 관점은 이를 간과한다. 이것이 행복주의 관점의 한계다.

 

60p 절망할 줄 아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정상적이고 정신이 더 건강한 것일 수 있다.

 

64p 절망에 빠지면 모순을 느끼며 삶에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64p 지금의 얼굴, 지금의 직업, 용기가 부족한 지금의 소심한 모습, 태어난 곳, 부모님의 이름처럼 타고난 유전자와 후천적인 행동에 의해 유한하게 정해진 이 모든 것이 우리의 현재 모습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67p 매일 아침 거울 앞에 서서 새로 난 흰머리를 보아도 나는 앞으로 영원히 존재할 것만 같다. 누구나 이러한 경험을 겪는다. 이러한 경험 속에 기본적으로 실존의 모순이 있다. 실존의 모순이 끝없는 절망을 키운다.

 

69p 시간에 대한 관념은 주관적이다. 절망에 빠지면 ‘시간이 영원히 무한할 것 같은 느낌’이나 ‘현재가 영원할 것 같은 느낌’은 더 크게 다가온다.

 

70p 답답한 감정, 방향을 잃어 막막한 느낌,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느낌, 인생에 별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는 기분이 든다 해도 지나친 비관주의도 아니고 불치의 병도 아니다. 절망을 하찮은 우울증으로 취급하고 싶다면 마음이 편한 상태를 ‘정상적인 상황’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확신이 오히려 진정한 마음의 병이다. 개인으로서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77p 절망이 극복해야 할 괴로운 상태라면 우선적으로 치료해야 할 질병은 진정한 개인으로서 사는 법을 모르는 상태다.

 

77p 열정의 망각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우리가 부주의해서 열정을 깨닫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탄탄한 시스템 안에서 철저하게 고안된 논리가 열정을 잊도록 부추긴다.

 

78p 근대성은 사람들이 온전한 개인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없게 교묘히 방해하고 개인으로서의 독립성을 추상적인 개념으로 만들기 위해 애쓴다.

 

78p 얼핏 우리는 논리적인 존재처럼 생각하고 우리 스스로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존재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 우리는 마치 진실인 것처럼 믿도록 강요하는 권위의 논리에 굴복한 존재일 뿐이다.

 

83p “스스로 생각하는 용기를 가져라!” 칸트가 권고한 말이다. 칸트는 인간이란 자발적으로 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개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합리적인 행동이 없다면 인간은 감정의 노예에 불과하다고 했다. 감정은 얼핏 친절한 보호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여기에 속아 의존적이 되기를 은밀히 바란다는 것이다. 독립적인 자신이 된다는 것은 용기와 이성을 갖추고 다른 사람들에게 행동이나 생각을 기대지 않는다는 의미로 통한다. 실제로 우리는 무엇인가에 의해, 누군가에 의해 생각의 자유를 침해당하면 예민하게 반응한다. 자유로운 생각은 개인으로서의 존엄성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85p ‘우리의 생각 속’에서 고통은 의식 속에 존재한다. 마치 여러분과 나와 같은 개인은 더 이상 ‘생각하는 주체’가 아니라 ‘사유하는 주체’처럼 보이게 된다.

 

88p 개인들이 이처럼 불특정 다수 상태로 전락하면 정말 위험하다. 개인들이 디지털 공간에서 익명성을 얻으면 책임감이 없어진다. 내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면 아무 책임도 없어진다.

 

99p 이성적인 사람은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분명하거나 타당한 판단을 내리는 것만이 목적이다. 목적을 이루면 거기서 생각을 멈춘다. 반면, 단순한 사유의 주체가 아니라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그 자체만으로 빛나는 진실을 얻을 수 있다.

 

119p 아무리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그 여자가 매력이 넘친다고 해도 그녀는 여러분이나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단점과 한계가 있는 인간일 뿐이다. 따라서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완전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 여자가 절대로 해낼 수 없는 무거운 의무만 잔뜩 짊어주는 꼴이다.

 

133p 시간은 영원할 것 같고 신처럼 영원히 살 것 같다고 착각하며 오히려 인생을 무미건조하게 보내며 낭비하지 않을까?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 존재라는 사실을 늘 생각하고 있지 않는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행동에 의미를 두려면 죽음을 늘 염두에 두는 일만큼 좋은 방법이 있을까?

 

145p 흘러가는 시간이 주는 고통에서 완벽하게 해방되는 방법, 온전히 우리 자신답게 사는 기술이 존재했다면 이미 널리 알려졌을 것이다. 그렇지 않기에 절망스러운 것이다. 그렇지만 오히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굉장히 흥미롭기도 하다.

 

149p 하지만 픽션을 모델로 삼으면 우리의 삶은 허상이 된다. 즉, 진정한 삶과는 멀어진다. 미학적인 아름다움은 순간의 아름다움이다. 영원불멸과 시간이 조화를 이루는 완벽한 순간인 것이다.

 

150p 우리의 삶에서는 시간이 우리의 주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저녁시간을 보내며 짜릿한 기쁨을 느낄 수 있지만 그때뿐이다. 아무리 이 순간을 무한대로 늘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152p 왜 키에르케고르가 미학적인 삶은 곧바로 절망으로 이어진다고 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덧없다는 괴로운 사실을 인식하면서 인생이 더 힘들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의 순간’을 즐기려 하다가 그 누구보다도 순간이 덧없음을 느끼며 괴로워하게 된다. 진정한 실천이 없는 현재는 표류할 뿐이며 진정한 계획을 이루는 데 필요한 시간도 확보하지 못한다.

 

156p 사랑을 지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루, 일주일, 몇 달이 아니라 10년, 20년, 30년, 평생을 말하는 것이다. 비결은 간단하다. 어쩌다 하는 이벤트성 행동보다는 매일 하는 소소한 행동이 더 가치 있다.

 

158p 사랑도 완벽할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을 바라보는 평소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진정한 우리의 완벽한 모습을 되찾으려 하지 말고 앞으로는 지금과 다른 새로운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현명하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선택과 결심이다.

 

161p 이런저런 선택을 피할 수는 없다. 우리의 모습은 저절로 형성될 수 없으며 무조건 원하는 대로 살겠다는 마음은 무모하다. 따라서 당연히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앞으로 어떠한 모습이 되고 싶은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163p 완벽한 선택만 하려고 시간만 보내다가는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끝없이 생각하는 이유는 완전히 만족스러운 자아를 만들 수 있는 연금술 같은 비법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만족할 수 있는 자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164p 우리 자신에 관한 정보가 부족한 것은 무네작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으면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완벽히 바라는 모습대로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노력하면 우리 안에 숨어 있는 가장 강렬한 욕망, 가장 솔직한 우리의 감정, 가장 두드러진 우리의 재능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국 선택과 관련이 있다.

 

165p 우리가 의식적으로, 자발적인 행동으로 우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엄밀히 말해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이 아니다. 그 누구도 우리가 자유롭게 받아들이지 않은 정체성을 우리에게 강요할 권리는 없다.

 

172p 은연중의 선택이 확실한 선택으로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 개성이 강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의식적인 각오를 하기에 두드러져 보인다.

 

174p 자아가 강한 사람은 지금의 자신이 모습에 만족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계획이 있다. 자신에게 충실하다는 것은 계획에 충실하다는 뜻이다.

 

177p 앞으로 어떤 남자 혹은 여자가 되고 싶은지 흰 종이에 펜을 들고 써보자. 이를 위해서는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 필요하다. 이것이 없으면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아 상황에 따라서, 타인의 시선에 따라서 자신의 정체성 모델이 흔들리게 된다.

 

180p 약속은 지나가는 시간을 영원불멸한 것으로 만들려는 의지다. 실제로 약속을 지키는 것은 시간에 의해 변화가 일어나도 그 모습 그대로 있겠다는 노력이다. 상황이 변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변명은 큰 실수다. 쉽게 저버릴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약속이 아니다. 또 한편으로 약속은 꼭 필요한 것이라면 자유로운 선택으로 하겠다는 마음이다. 약속을 할 때는 자유롭게 이런저런 말을 한다. 약속을 지켜야 하는 필연적인 상황은 여러분의 자유에서 나온 것이지만 진정으로 필요해서 한 것이다.

 

184p 아무 이유도 없는 사악한 의도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186p 우리는 암묵적으로 어떤 결과를 얼마나 심각하게 초래했느냐에 따라 우리 행동의 비도덕성 정도를 측정하는 것 같다.

 

190p “살아서 했던 일에 만족스러운가?” 이런 연습을 자주 반복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결국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지 늘 기억하자.

 

197p 도덕은 더 이상 보편으로 통용되지 않기에 상대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도덕은 사회적인 합의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203p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스스로 하는 선택이 윤리적이 되려면 언제나 개인 상황에 맞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205p 도덕이 여러분에게 조언하는 것은 자신이 지닌 차이점을 활용해 공동생활에 좋게 기여하라는 것이다. 도덕이 충고하는 것은 자신이 남다른 면을 가졌다고 우월감에 젖지 말라는 것이다.

 

210p 우리만의 개성을 보호하려면 진정한 자신을 유지해야 한다. 즉, 특별한 사람이 되어서 나다워지겠다는 목표를 세워서는 안 된다. 그 끝은 모든 사람과 비슷해지는 것이다. 그보다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어 특별함으로 빛나겠다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즉 인간미가 있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다. 우리만의 다른 점은 그 자체로 높이 평가받아야지 비교라는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

 

223p 우리가 느끼는 실패의 두려움은 결코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유를 인식할수록 그만큼 책임감을 느낀다.

 

223p 우리가 불안한 것은 특정한 대상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미래에 대한 걱정, 실수할까 봐 느끼는 초조함은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실패할까 봐 느끼는 두려움이 불안감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불안해하는 진정한 대상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224p 누구든 완벽해질 의무는 없다. 이상에 다가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된다. 설령 야망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도 이상에 다가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그 자체로 뿌듯해해도 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이상과 계속 멀어지고 있다면 다른 문제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점점 우리 책임이라는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227p 도덕에 지나치게 매몰되면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227p 그렇다면 우리에게 부담만 주는 도덕적 이상을 왜 따라야 할까? 도덕의 기준을 인간이 실현할 수 있는 정도로 낮추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인간이 따를 수 있는 정도로 도덕의 기준을 낮추려는 의지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228p 도덕을 잊어야 하는 죄책감을 달랠 수 있다면 치러야 할 대가(인간으로서의 지위 포기)는 우리가 바라는 해결책이 아니다.

 

228p 어쩔 수 없는 일인데도 왜 책임감을 느껴야 할까? 어찌 되었든 우리 잘못은 아닌데 말이다. 왜, 그리고 무엇으 ㄹ위해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가?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가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229p 인간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이지만 나의 잘못이 되는 순간 죄책감을 느낀다.

 

232p 왜 자기 증오가 심해져 자기 비하로 확대될까? “나는 아무것도 아냐, 실패한 인간이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야.” 절망한 사람이 이토록 자책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자신의 모습이 될 수 없어도 마음을 다잡으면 된다. 그리고 자연의 법칙처럼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자기 자신에게 절망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절망할까? 부담스러운 삶의 모순을 자신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 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직접 관련이 없어도 자기 탓이라 생각한다.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감정은 탈출구가 없어 끔찍해 보인다.

 

264p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사람이 이런저런 것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읮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것이라고 희망을 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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